아이엠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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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글] 지금 사랑하지 않는자, 모두 유죄

아이엠줄리 2008. 9. 25. 04:07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단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 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 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 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스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겨울도 난 감옥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 같은 글이나 쓰련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자 - 노희경








처음 이 글을 접했을 때가 지금도 또렷하게 생각난다. 그냥 잠시 멍해져 있던 나를 볼 수 있었다. 
공감.

그렇게 공감하면서도 공감이 된다는 자체가 서글퍼지고 만 것이다.
그 감정의 크기야 어찌하였든 사랑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채 쩔쩔매던 내 모습이 가여웠다. 뭐가 그리 두려웠던가. 내 모든 것을 걸고 온 마음으로 부딪히는 사랑을 할 줄 알던 나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상처로 뒤덮힌 지난 날들을 그토록 증오하면서 그 기억을 옅게 만들 수 있는 묘안을 스스로 떠밀어버렸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게 맞다.

다음 사람에게는 내 모든 사랑을 남김없이 아낌없이 주어야겠다는..그런 생각을 했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삼순이에 등장해 유명해졌던 알프레도 수자(?)의 구절을 되뇌이며 말이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